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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이클 싱어 (가슴 속 숨어있는 두려움과 고통을 마주할 용기)

Garden Ants 2020. 5. 23. 14:27

 

가슴 속 숨어있는 두려움과 고통을 마주할 용기를 내야 합니다.

 

간혹 사람 만나는 일이 두렵고, 싫고, 스트레스일 때가 있습니다.

 

마음을 가만히 들여다보면 그 마음 중심에 고통이 있었다는 것을 알아챌 수 있습니다.

 

마이클 싱어의 상처받지 않는 영혼에서는 이 고통을 피하지 말고 마주해서 고통 뒤에 있는 진짜 나의 일부를 봐야 한다고 합니다.

 

우리가 그토록 만나고 싶은 우리의 존재의 일부는 우리 가슴속 고통의 층 너머에 있다고 합니다.

 

하지만 우리는 고통은 힘든 것, 나쁜 것, 어려운 것으로 아주 오래 전부터 믿고 있기 때문에 고통이라는 것을 피하는 습관이 아주 깊이 박혀 있다고 합니다.

 

 

 

고통앞에서 평화로워지려면, 고통을 대면하기로 마음을 먹고, 고통을 무서워하지 말고, 웃어넘기거나 즐기거나,

 

떨어져서 바라보거나, 지나가길 기다리라고 합니다.

 

우리 행동 대부분의 근원적 배경은 고통이 숨겨져 있다는 것입니다.

 

인정하기 싫어서 무시당하기 싫어서, 더 잘 보이려 하고 더 잘 나보이려고 하는 그 욕심은 끝없이 올라갑니다.

 

그것들을 하나씩 벗겨보면 결국 고통이 우리 마음 가운데에 존재하고 우리는 그 고통을 피하기 위해서 행동하고 있었음을 알게 됩니다.

 

좋아 보이려 행동하지 말라는 것이 아니라 고통에 휘둘리지 말라는 것입니다.

 

진정한 영적성장과 개인의 근본적 변화를 위해 꼭 필요한 것중 하나는 고통앞에서 평화로워지는 것입니다.

 

변화없이는 확장이나 진화가 일어날 수 없지만, 변화의 기간이 늘 편안한 것만은 아닙니다.

 

변화를 위해서는 익숙한 것에 대해 문제를 제기할 수 있어야 하며, 안전과 안락과 통제력에 대한 해묵은 갈망에 의문을 제기할 수 있어야 합니다.

 

이것은 종종 고통스런 경험으로 다가옵니다.

 

이 고통에 익숙해 지는 것이 성장과정의 일부입니다.

 

마음이 혼란된 느낌을 좋아하지 않더라도 그것이 어디에서 오는 지를 알고자 한다면, 내면에 조용히 앉아서 그것을 대면할 수 있어야만 합니다.

 

자신의 혼란을 대면할 수 있게 되면, 가슴 속 깊은 곳에 자리잡고 있는 고통의 층이 있음을 깨달을 것입니다.

 

 

 

이 고통은 매우 불편하고 도발적이어서 자아의 존재를 위협하기 때문에 우리는 그것을 피하는 데에 삶을 바쳐왔습니다.

 

이 고통을 피하기 위해 키워 온 사고와 신념과 행위와 존재 방식위에 우리의 온 인격이 형성되었습니다.

 

고통을 피하다 보면, 고통의 층 너머에 있는 자기 존재의 한 부분을 탐사할 수가 없으므로 진정한 성장은 당신이 마침내 고통을 대면하기로, 마음 먹을때 일어납니다.

 

그 고통은 가슴 한 가운데에 있어서 그것이 방사되어 당신이 하는 모든 일에 영향을 미칩니다.

 

마음은 이 고통 피하기를 중심으로 형성되고 그 결과 고통에 대한 두려움이 마음의 밑바탕을 이룹니다.

 

고통이 마음이 있게 한 근원인 것입니다.

 

우리가 고통을 피하기 위해 뭔가를 하고 있다면, 그 고통이 우리의 삶을 지배하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의 모든 생각과 감정이 그것에 대한 두려움으로 물들 것입니다.

 

우리의 성격과 행동 습관이 모두 이 고통을 피하기 위한 것입니다.

 

예를 들어 몸매와 옷차림 말씨와 헤어스타일을 다듬음으로써 그것을 피합니다.

 

누군가가 체중에 대해 얘기하거나 내 옷차림에 대해 나쁘게 이야기하거나 영화보러 가자고 친구들에게 전화를 돌렸는데, 단 한명도 빠짐없이 바쁘다고 거절한다면, 상처를 받습니다.

 

그것은 가슴속 깊은 곳에 우리가 처리하지 못한 고통이 있기 때문입니다.

 

 


이 고통을 피하려는 우리의 노력이 이 감추어진 고통과 연결 된 예민한 두려움의 층들을 겹겹이 만들어 놓은 것입니다.우리는 무시당하는 고통을 피하기 위해서 우정을 지속하려고 무진 애를 씁니다.

 

친구에게서 조차 무시당할 수 있다는 것을 우리는 겪어서 알기 때문에 그런 일을 피하기 위해 매우 열심히 노력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친구가 받아들일 만한 것을 해야만 합니다.

 

이것이 우리의 옷차림 행동거지를 결정하게 합니다.

 

이제 우리는 무시당하는 것에 신경을 쓰지 않습니다.

 

옷차림과 행동거지 자동차가 우리의 관심사가 됩니다.

 

이런 방식으로 고통은 한겹 두겹 층을 형성합니다.

 

우리의 존재를 입증해 보이는 행위들의 배후 동기가 고통이 아니라면, 사람들의 말이 우리에게 영향을 미칠 수가 없습니다.

 

하지만 자신을 입증해 보이고자 하는 이유가 자신은 잘 모르겠지만 그 근원이 고통이기 때문에 우리는 결국, 매사를 고통을 빌미로 만들고 맙니다.

 

결국 너무나 예민해져서 상처받지 않고는 이 세상을 살 수 없게 됩니다.

 

가슴에 상처입는 사건이 없이는 사람을 만나고 일상생활을 영위할 수조차 없게 됩니다.

 

주의 깊게 살펴보면 가벼운 만남조차도 종종 다소간의 고통, 불안감 혹은 마음의 혼란을 일으켜 놓는다는 것을 알게 될것입니다.

 

여기에서 나오고 싶다면 제대로 된 삶을 살고 싶다면, 심리적 고통을 회피하는 데에 더 이상 평생을 바치지 않는 편이 좋을 것입니다.

 

사람들이 우리를 좋아하는지, 우리의 자동차를 멋지게 볼까를 고민하며, 평생을 보내지 않는 게 좋을 것입니다.

 

고통을 피하면서 평생을 보낸다는 것은 고통이 늘 바로 뒤에 붙어 있음을 뜻합니다.

 

언제 어떤 일로 실수를 저지를지 모릅니다.

 

결국 고통을 피하는 일로 평생을 보내고 맙니다.

 

자신을 들여다 보고 이 사실을 제대로 알고 나면, 자신이 다시 근본적인 양자택일의 기로로 돌아와 있음을 깨달을 것입니다.

 

그 하나는 내부의 고통을 외면한 채 외부세계에서 계속 발버둥치는 것입니다.

 

다른 하나는 내부의 고통을 피해 다니느라 평생을 허비하지 않으리라고 결심하고 그것을 제거하는 것입니다.

 

후자를 선택했다면 내면의 고통과 혼란을 겁내지 않기를 배워야 합니다.

 

그러려면 내면의 고통을 그저 에너지 흐름의 일시적인 변동으로 간주하세요.

 

누군가가 가슴에 불을 지르는 말을 할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그것은 지나갑니다.

 

 


그것은 일시적인 경험입니다.

 

불안감을 느낀다면 그것은 하나의 느낌입니다.

 

하나의 느낌 정도는 우리도 소화해낼 수 있습니다.

 

당황스러움을 느낀다면 그것도 그저 하나의 느낌입니다.

 

그것은 그저 이 세상의 일부분입니다.

 

시기심에 속이 탄다면, 그것은 그저 가벼운 상처를 바라보듯이 떨어져서 바라보세요.

 

그것은 우리를 지나가는 세상 만물 중의 하나입니다.

 

그것을 웃어넘기세요.

 

그것을 즐기세요.

 

두려워 하지 마세요.

 

우리가 그것을 건드리지 않는 한, 그것은 우리를 건드리지 않습니다.